Ghost를 기술 블로그용 CMS로 선택한 이유
이 블로그를 만들기까지 오랜 시간이 소요되었다. 안타깝게도 그 중 대부분의 시간은 내가 어떤 환경과 도구에 의존하면 좋을지 헤매는 일에 쓰였다. 여기에는 워드프레스를 비롯한 여러 블로깅 도구들을 하나하나 비교하거나, 요즘 널리 쓰이는 정적 사이트 생성기(SSG; Static Site Generator)들을 구석구석 들여다 보거나, 서툴게나마 Flask 웹 프레임워크로 직접 블로깅 도구를 만들어보는 과정이 모두 포함되었다.
이 지난한 여정이 내게 안겨준 결론은 허무하게도 "내 고민의 본말이 전도되었다"는 것이었다. 날 도와줄 도구를 찾는 일이 어느 순간부터는 내 공간을 남에게 돋보이게 할 도구를 찾아다니는 일로 변해 있었다. 목수가 방망이를 깎겠다면서 금칠한 연장을 찾는 꼴이었다.
블로그에서 돋보여야 할 것은 오직 콘텐츠 뿐이다. 블로깅 도구의 역할은 콘텐츠 생산의 수고로움을 깔끔하게 덜어주는 것이 우선이다. 제 역할이 고려되지 않은 첨단의 기술 스택은 자기 효능감의 수단 이상이 될 수 없다.
내가 고려한 블로깅 환경 조건 다섯 가지
마음을 고쳐먹고, 원하는게 무엇인지를 다시 고민했다. 내가 원했던 것은 온전히 글쓰기에만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의 기술 블로그 개설이었다. 이런 환경의 조성을 우선적인 목표로 삼고, 필요한 조건들을 추려냈다. 이렇게 추려진 조건들은 다음과 같다.
- 마크다운 문법으로 (코드를 포함한) 원활한 글쓰기가 가능해야 한다.
- 평소 이용하는 글쓰기 환경이 블로그 환경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되어야 한다.
- 글을 써서 올리는 행위와 무관한 사용자 경험은 최대한 배제되어야 한다.
- 데이터와 시스템의 유지 보수가 간편해야 한다.
- 특정 플랫폼 서비스에 종속되지 않아야 한다.
목표와 조건이 선명해지자 고민의 시간이 대폭 줄어들었다. 현존하는 대부분의 블로깅 도구와 플랫폼들이 1-4번 조건을 만족시키지 못했다. 정적 사이트 생성기들은 기술적으로 매력 요인이 있었으나 글을 쓰고 관리하는 과정에 매번 번거로운 작업 단계가 요구된다는 점에서 3번 조건을 충족하지 못했다.
타협점 없이 다섯 가지 조건을 최대한 만족할 수 있는 도구를 원했다. 내가 고른 선택지는 Ghost다.
Ghost를 선택한 이유
Ghost는 오픈소스 CMS다. 내가 원하는 빠른 성능과 군더더기 없는 인터페이스, 깨끗한 디자인을 두루 갖췄다. 자체적으로 Medium에 견줄 만한 글쓰기 환경을 제공하면서 커스텀 도메인과 스타일, 플러그인을 함께 지원한다. 무엇보다도 현재 글쓰기 도구로 사용 중인 Ulysses와 완벽하게 연동된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Ulysses와 연동된 Ghost 환경에서는 초안 작성부터 퍼블리싱, 그리고 업데이트까지 모든 과정이 하나의 흐름처럼 매끄럽게 연결된다. 일단 시스템이 갖춰지면 평소의 글쓰기 루틴을 지키면서 블로그 운영까지 함께 이어갈 수 있다. 굳이 블로깅 도구를 이용해서 글을 다시 편집하거나, 페이지 생성을 위해 빌드를 반복할 필요가 없다. 온전히 글쓰기에만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이라는 목표에 이상적으로 부합한다.
나는 현재의 블로깅 환경에 만족한다. 완벽하진 않더라도 지금으로서는 최선이라는 마음이 든다.
나의 목적과 필요를 명확히 하자
나의 기준이 모두의 기준일 수는 없다. 내가 Ghost를 기술 블로그용 CMS로 선택한 이유는 온전히 나의 생활 습관과 지향점에 기대어 있다. 리눅스 환경에 익숙치 않은 사람에게 Ghost는 여전히 진입 장벽이 높은 도구다. 반대로 이런 종류의 도구나 기술에 이미 능숙한 사람에게는 내가 고른 선택지 이외에도 다른 유용한 선택지가 많을 수 있다. 내게 큰 장점으로 다가온 Ulysses와 Ghost의 연동 기능은 마크다운 편집기에 매년 $50을 지불할 의사가 없는 사람에겐 아무런 매력이 없을 것이다.
블로깅은 결국 콘텐츠를 만드는 일이다. 일의 효율을 높일 업무 환경을 고민하듯이, 콘텐츠 생산자로서 나의 활동을 가장 원활하게 만들어 줄 환경이 무엇인지를 먼저 고민해야 한다. 도구를 고르는 건 그 다음의 일이다. 목적과 필요가 불투명한 상태로 첨단의 도구를 찾아 헤매는건 장기적으로 무익할 뿐만 아니라 그 과정에서 많은 에너지를 헛되이 낭비하게 만든다. 이번에 블로그를 만들면서 몸으로 익힌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