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누구에게든 나의 지난 삶에 대해 단 하나의 해명도 할 필요가 없다는 것. 이 해방감이 좋았다. 본국에서 1만 킬로미터 떨어진 독일에서의 삶을 선택할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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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에 독일에서 새 삶을 시작했다.
낯선 나라, 생경한 도시, 새로운 커리어. 설렐 줄 알았다. 막상 와보니 감상에 젖을 여유가 없었다. 국경 넘어 밥벌이를 하려면 생각보다 많은 절차가 필요했다. 관료주의의 나라라는 말은 허명이 아니었다. 체류 신분과 거주지와 소득과 납세를 증명하는 모든 일에 상상 이상의 비효율이 뒤따랐다. 한국에서 10분이면 해결되었을 운전면허 교환이 이곳에선 석 달이 걸렸다. 급여 계좌 모바일 뱅킹에 필요한 비밀번호들이 일주일에 걸쳐 우편으로 제각기 하나씩 배송되는 상황도 겪었다. 내 독일 생활 적응기는 분노 섞인 체념의 기억으로 가득하다.
힘겨운 이주 과정을 견딜 수 있었던 건 해방감 덕분이다. 이곳에선 어느 누구도 내가 살아온 내력과 출신지, 나이, 가족관계, 자녀 계획, 성적 정체성 등을 무례하게 들추지 않았다. 경력상의 공백 기간을 약점 삼아 물고 늘어지지도 않았다. 과로로 생긴 질환을 두고 자기 관리를 탓하며 힐난하는 사람도 없었다. 한국 사회에서 유독 강박적으로 집착하는 생애주기별 요구 스펙에 내 삶의 이력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업신여김을 당하는 일도 없었다. 그저 내 직업적 배경과 기술이 어떠한 분야에 어떤 도움이 될 것인지 설득하면 되었다. 누구에게든 나의 지난 삶에 대해 단 하나의 해명도 할 필요가 없다는 것. 이 해방감이 좋았다. 본국에서 1만 킬로미터 떨어진 독일에서의 삶을 선택할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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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4월부터 새내기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서 해온 일은 다음과 같다. 공개할 수 있는 사항들만 추리다 보니 실제 업무량에 비해 내용이 단출하다.
- 유럽 접근성 법안(EAA; European Accessibility Act)의 발효 시점(2025년 6월)에 맞춰 사내 핀테크 프론트엔드 제품의 웹 접근성 문제를 해결했다. 모든 페이지에서 Lighthouse Accessibility Score 100%를 달성했고, 접근성 검사 도구(axe-core)를 CI 파이프라인에 통합하여 자동화했다. 2시간가량이 예상되던 수동 테스트를 수 초 이내의 자동화 프로세스로 개선했다.
- 25개 나라에서 서비스 중인 앱들의 결제 화면 흐름에서 플랫폼별 사용자 테마 기능이 제대로 적용되지 않는 UX 결함을 발견하여 이를 해결했다. ADR 작성 및 검토, 프론트엔드/백엔드 코드 개발 과정을 모두 거쳤다.
- 사내 여러 플랫폼의 서로 다른 디자인 시스템들과 우리 팀 제품의 UI 동기화를 위한 기술적 방안을 연구했다. 이 방안은 RFC 문서 승인을 거쳐 내년도에 추진할 팀 이니셔티브 중 하나로 확정되었다.
- 사내 Feature Flag 도구를 이용하여 팀 핵심 제품의 A/B 테스트 및 로깅 기능을 구현하고, 이에 기반한 UI/UX Test Iteration의 첫 삽을 떴다. 이 또한 내년 팀 이니셔티브의 주요 아이템 중 하나가 되었다.
- 팀 내 주요 제품의 백엔드 로직에서 핵심 메트릭에 대한 누락 구간을 발견하여 이를 해결했고, Grafana의 Dashboard와 Alert을 이용해서 해당 지표에 대한 상시적인 모니터링이 가능하도록 구현했다.
- 회사에서 내가 구현한 기술적 결과물에 대해 상위 레벨 조직(Tribe)에서의 Tech Demo Presentation을 입사 후 8개월 동안 총 6회 진행했다. 휴가 기간을 제외하면 매월 한 번씩은 발표한 셈이다.
새 경력을 시작하자마자 중량감 있는 과업들을 맡았다. 여러 사정과 시운이 겹쳐서다. 뭣도 모르고 헤매던 주니어에게 과감히 과업들을 밀어주며 도와주신 매니저와 동료분들께 그저 감사할 뿐이다. 이곳에선 분기마다 팀원 각자가 개별적으로 과제를 골라 End-to-End로 책임지며 일감을 스스로 만들고 해결하는 문화가 정착되어 있다. 덕분에 기존 제품과 코드, 그리고 로그들을 살펴보다 발견한 이슈를 직접 공유하고 해결한 경험도 여럿 생겼다.
프론트엔드 담당으로 팀에 합류했지만, 실제로는 역할의 경계를 넘나들어야 했다. 굳이 표현하자면 특정한 기술 영역에 국한되지 않고 팀 차원의 여러 중단기 과제에 기여하는 Problem Solver의 역할에 더 가까웠던 것 같다. UI/UX 문제를 해결할 땐 React와 Next.js 코드를 작성했고, 백엔드 모듈의 기능 및 메트릭 개선이 필요할 땐 다른 팀이 메인테이너인 Kotlin 기반 프로덕트를 다뤘다. Observability 개선이 필요할 땐 Grafana를, 클라우드 리소스를 다뤄야 할 땐 Terraform을 별도로 공부해서 활용했다.
엔지니어로서 막 걸음마를 시작한 마당에 감당하기 쉬운 상황은 아니었다. 뾰족한 강점을 키워야 할 시기에 너무 이르게 제너럴리스트의 역할로 내몰리는 것은 아닌가 하는 고민도 있었다. 하지만 달리 보자면, 팀과 조직의 목표에만 부합한다면 성장 방향을 마음껏 선택하고 그에 맞는 기술을 익혀 바로 활용할 수 있는 업무 환경이란 의미도 된다. '풀스택'이라는 개념을 굳이 의식한 적은 없다. 내 성장과 조직의 목표 달성을 일치시키는 과정에서 '신뢰'라는 자산을 키우려다 보니 기술 선택의 폭이 자연스레 넓혀진 셈이다. 깊게 파려면 때로는 넓게 파야 하는 순간도 오는 것이다. 지금이 그때라 생각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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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비도 있었다. 결제 과정의 사용자 화면에서 특정 버튼의 노출 타이밍을 바꾸는 A/B 테스트 작업이었다. 이 간단한 실험을 실행에 옮기는 데에 무려 1개월의 시간이 소요되었다. 코드 구현 자체는 일찌감치 완료된 상태였다. 문제는 기술 외적인 곳에서 발생했다.
전 세계 수십 개 국가에서 동시 운영되는 제품, 그중에서도 사용자 결제 흐름을 직접 다루는 영역이기에 작은 비주얼 요소 하나를 바꾸는 일조차 간단치 않았다. 프로덕트 매니저(PM), 프로덕트 운영팀, 실험 대상인 플랫폼 측 프로덕트 팀과 엔지니어 등 수많은 이해관계자의 업무 협조가 필요했다. 문서화되지 않은 채 알음알음 공유되던 업무 콘텍스트, 그리고 그로 인해 발생한 예상치 못한 운영 이슈들이 연이어 생기면서 업무 진행이 더더욱 늦어졌다. 때로는 엔지니어인 내가 직접 프로젝트의 속행 여부와 타겟 변경을 제안해야 하는 상황도 생겼다. 11월 중순 런칭이 목표였던 테스트는 결국 두 차례의 연기를 거쳐 12월 중순에야 시작되었다. 뼈아픈 시행착오였다.
이 과정은 내게 Tech Owner의 역할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남겼다. 단지 코드를 짜고 기능을 구현하면 그만일까. 엔지니어라는 이유로 내 역할을 기술 이슈 대응이란 좁은 영역에만 가두어도 되는 걸까. 다양한 조직과 이해관계자가 얽힌 과업이라면,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라는 고민을 넘어 목표 달성에 필요한 리소스와 협업 대상, 그리고 잠재적인 비기술적 방해 요인의 여부까지 함께 살펴야 하지 않을까. 이러한 리스크를 사전에 식별해 내는 것이 앞으로의 업무 로드와 일정 관리에 필요한 또 다른 능력이 아닐까. 신입 엔지니어로서 얻은 소중한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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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에만 8개 나라에서 온 8명의 팀원을 만났다. 살펴보면 누구 하나 사연 없는 사람이 없다. 이야기 소재가 메마를 일이 없다. 때로는 가슴 아픈 이야기도 들린다. 전쟁, 내전, 혁명, 학살의 기억이 이곳에선 가까운 관계 속에서 현재진행형으로 실존한다. 듣다 보면 알게 된다. 나는 이들 가운데 가장 안온한 배경을 누려온 사람이다.
다양한 배경이 뒤섞인 환경에서 공사 구분 없이 매 순간을 영어로 응대하는 일은 여전히 버겁다. 모든 생각과 말에 외국어 필터를 덧씌우니 내가 가진 능력이 절반 넘게 깎여나간 느낌이다. 해야 할 말을 제때 올바르게 다 하지 못했다는 울분도 조금씩 쌓인다. 어쩔 수 없다. 영어를 모국어로 두지 않은 모든 사람의 숙명이다. 다들 나와 같은 시기가 있었겠지. 그러니 당신들도 내가 헤매는 걸 적당히 받아줘. 유려하진 못해도 알아들을 정도는 되잖니. 이런 생각으로 매사를 대강 수습하면서 지낸다. 적어도 이곳에선 영어 억양이나 발음, 어휘 가지고 망신 주는 사람을 아직 보지 못했다. 애초에 생겨서도 안 될 일이지만.
다만 한 가지 꾸준히 지키는 철칙이 있다. 영어를 쓸 때 Gemini나 ChatGPT 같은 LLM 서비스의 도움을 최대한 멀리하는 것이다. LLM에도 특유의 어투가 있다. 일상 대화에서 잘 쓰이지 않을 법한 어휘의 반복, 간명하지 못한 장황한 문체, 불필요한 아부성 표현들. 이런 것들은 영어가 제2 언어인 사람끼리 모인 자리라 해도 금방 드러난다.
언어는 소통의 매개체인 동시에 한 인간의 아이덴티티를 드러내는 그릇이기도 하다. 나를 파악할 수 있는 제1단서이자 도구인 언어의 발화를 AI에게 외주 주고 싶지 않다. 어설프고 힘겹더라도 내 언어로, 내 방식대로 표현하려고 한다. 이런 마음으로 그동안 매일의 미팅과 월간 데모 발표를 늘 준비해 왔다. 나는 회사에서든 일상에서든, 나를 대하는 사람들이 앞으로도 나를 온전한 인간으로 인식해 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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첩첩산중의 내년이 다가온다.
우선 아내와 두부의 독일 이주가 시작된다. 아내는 이 선택을 위해 일생에 다시 없을지도 모르는 커리어 최대의 기회를 포기했다. 한국에서 나고 자라 기반을 쌓아 온 두 사람이 이토록 어지러운 시절에 아무런 연고도 없는 외국에서 강아지와 함께 본격적인 정착을 준비해야 한다. 새 체류 허가를 받고, 새집을 구하고, 각종 서류와 심사와 화물과 이삿짐의 숲을 헤쳐나가야 한다. 솔직히 두렵다. 오직 재회의 기쁨 하나만 바라보며 용기를 낼 뿐이다.
엔지니어로서도 새로운 도전이 기다리고 있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인해, 경력을 새로 시작한 지 1년도 안 된 내가 내년 1분기 동안 프론트엔드 제품들의 POC(Point of Contact) 역할을 공동으로 맡게 되었다. 특히 작년 하반기에 시니어 멘토가 리드하여 런칭한 신규 제품에 대해서는 예정된 모든 기능 구현과 운영을 책임져야 한다. 거대 기업의 센트럴 조직에서 주니어에게 분기 단위 이니셔티브의 리드 권한을 준다는 건 분명 귀한 기회다. 업무 방식과 소통 능력에 대해 그간 쌓아온 신뢰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라 믿고 싶다. 내가 커리어의 다음 단계로 나아갈 자격이 있는지를 확인받는 시험대이기도 할 것이다.
자랑스러울 것까진 없지만 딱히 움츠러들 것도 없었던, 그럭저럭 잘 견뎌낸 2025년이었다. 내년 이맘때에도 같은 마음으로 한 해를 돌아볼 수 있다면 좋겠다. 지금의 내 생활은 오롯이 내 가족과 주변 은인들의 은혜로 인해 가능했음을 상기하면서. 내 모든 용기는 이들로부터 얻은 것이므로.